주식 기초 · 40/89강 · 고급 · 4분 읽기
전환사채(CB)란 무엇인가 — 채권과 주식이 결합된 구조와 리픽싱이 주가를 누르는 원리
이 글의 목차
표면이자 0%짜리 채권이 존재하는 이유
어떤 회사가 이자율 0%, 심지어 마이너스에 가까운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했다는 공시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채권에 돈을 빌려줄 투자자는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채권은 실제로 꾸준히 발행되고, 투자자들도 기꺼이 인수합니다. 이 채권에는 이자 대신 훨씬 강력한 보상이 붙어 있기 때문인데, 바로 "정해진 가격에 이 회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것이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CB)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CB가 왜 이런 낮은 이자로도 발행될 수 있는지, 그리고 CB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리픽싱" 조항이 왜 종종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를 구조 원리부터 설명합니다.
전환사채란 — 채권에 콜옵션을 붙인 상품
전환사채는 이름 그대로 두 가지 성격이 합쳐진 증권입니다. 기본은 회사가 투자자에게 돈을 빌리고 만기에 원금과 정해진 이자를 갚기로 약속하는 채권입니다. 여기에 "만기 전 언제든 정해진 가격(전환가액)으로 이 채권을 회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라는 콜옵션이 얹혀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CB를 산다는 것은 이 채권과 옵션을 한 세트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옵션의 가치가 CB의 낮은 표면이자를 설명합니다. 회사가 순수하게 채권만 발행한다면 신용등급과 시장 금리에 맞는 이자를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환권이라는 옵션 자체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투자자는 그 옵션 가치만큼 표면이자를 낮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표면이자가 0%인 CB도 드물지 않습니다. 회사 주가가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투자자는 이자를 거의 포기하는 대신 주가 상승분을 전환을 통해 취하겠다는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회사는 왜 주식이나 일반 채권 대신 CB를 선택할까
회사 입장에서 자금 조달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같은 순수 부채, 유상증자 같은 순수 자본,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CB 같은 하이브리드입니다. CB는 이 세 선택지 사이에서 회사에 몇 가지 실질적인 이점을 줍니다.
첫째, 이자 비용이 낮습니다. 특히 코스닥 상장사처럼 신용등급이 낮거나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성장 단계 기업은 일반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매우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하는데, CB는 전환권이라는 옵션 가치로 이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합니다. 둘째, 즉각적인 지분 희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유상증자는 발행과 동시에 신주가 시장에 풀리고 주식 수가 늘어나지만, CB는 전환권이 실제로 행사되기 전까지는 발행주식수에 변화가 없습니다. 셋째, 현재 주가가 회사가 생각하는 적정 가치보다 낮다고 판단될 때, 지금 당장 그 낮은 가격에 신주를 파는 대신 "미래의 더 높은 전환가액"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CB는 재무구조가 아직 탄탄하지 않거나 주가가 눌려 있는 시기의 기업에게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자금 조달 수단으로 쓰입니다.
리픽싱(Refixing) — 전환가액이 떨어지는 구조
CB의 핵심에는 전환가액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환가액이 10,000원인 CB를 산 투자자는 이 채권을 주당 10,000원 가격으로 주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CB 발행 이후 회사 주가가 8,000원, 6,000원으로 계속 떨어진다면, 전환권은 사실상 무의미해집니다. 10,000원에 전환할 바에야 시장에서 6,000원에 주식을 사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CB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에 흔히 포함되는 조항이 리픽싱입니다. 발행 이후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하면, 계약에 정해둔 산식에 따라 전환가액을 하향 조정해주는 장치입니다. 한국에서는 통상 이 하향 조정에 하한선을 두는데, 최초 전환가액의 70% 수준이 그 기준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즉 전환가액이 무한정 낮아지지는 않고, 일정 바닥 아래로는 더 내려가지 않도록 제한을 둔다는 뜻입니다. 정확한 하한 비율과 예외 요건은 관련 법령과 발행 계약서, 그리고 시기별 개정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특정 종목의 CB를 실제로 검토할 때는 해당 증권의 발행 조건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리픽싱이 왜 주가에 물량 부담으로 작용하는가
여기서 CB가 주가에 미치는 독특한 압박이 나옵니다. 리픽싱으로 전환가액이 낮아진다는 것은, 같은 채권 금액으로 CB 투자자가 전환받을 수 있는 주식 수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100억 원어치 CB를 전환가액 10,000원에 발행했다면 전환 시 100만 주가 나오지만, 전환가액이 리픽싱을 거쳐 7,000원까지 낮아지면 같은 100억 원이 약 143만 주로 바뀝니다. 발행주식수가 그만큼 더 늘어나는 셈이니,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는 더 크게 희석됩니다.
문제는 이 희석이 실제로 전환권이 행사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 주가가 하락하며 리픽싱이 예상되는 국면부터 이미 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CB가 곧 리픽싱되어 더 많은 물량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를 주가에 선반영하고, 이는 추가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CB 투자자 다수가 실제로 낮아진 전환가액으로 전환한 뒤 시장에서 바로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주가 하락 → 리픽싱 → 물량 증가 우려 →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CB 발행이 많은 종목, 특히 아직 리픽싱이 남아 있는 CB 물량이 큰 종목은 주가 반등이 이 잠재 물량에 눌려 제한되는 경우가 실제로 관찰됩니다.
CB와 BW, EB — 비슷해 보이지만 구조가 다른 세 증권
CB와 자주 혼동되는 증권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BW)가 있습니다. 둘 다 채권에 주식 관련 권리가 붙어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 권리의 성격이 다릅니다. CB는 전환권을 행사하면 채권 자체가 주식으로 바뀌면서 사라집니다. 반면 BW는 채권(사채)과 신주인수권이 법적으로 분리된 별개의 권리입니다.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려면 별도의 돈을 추가로 납입해 새 주식을 사야 하고, 이 권리를 행사해도 원래의 채권은 그대로 남아 만기까지 이자와 원금을 지급합니다. BW 중에서도 신주인수권을 채권과 분리해 따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을 분리형 BW, 채권에 붙어서만 거래되는 것을 비분리형 BW라고 부릅니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교환사채(Exchangeable Bond, EB)입니다. CB와 BW가 발행 회사 자신의 신주를 만들어내는 반면, EB는 발행 회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의 주식(대개 자사주나 계열사 지분)과 교환하는 채권입니다. 새 주식이 생기지 않으므로 발행회사의 발행주식수 자체는 늘지 않는다는 점이 CB·BW와 가장 크게 다른 부분입니다.
| 구분 | 전환사채(CB) | 신주인수권부사채(BW) | 교환사채(EB) |
|---|---|---|---|
| 권리 행사 시 채권 | 소멸 (주식으로 전환) | 존속 (권리만 별도 행사) | 소멸 또는 존속 방식에 따라 다름 |
| 추가 납입 필요 여부 | 불필요 | 필요 (신주인수권 행사 시 별도 납입) | 불필요 |
| 새로 발행되는 주식 | 있음 (신주) | 있음 (신주) | 없음 (기존 보유 주식과 교환) |
| 발행회사 지분 희석 | 있음 | 있음 | 없음 |
왜 개인투자자는 CB 발행 소식을 경계할까
CB 발행 공시가 나오면 시장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는 앞서 다룬 희석·리픽싱 우려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 일부 기업에서 반복됐던 저가 CB 논란입니다.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전환가액으로 CB를 인수한 뒤, 이후 전환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지분을 늘리거나 시세차익을 취하는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서 금융당국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콜옵션(매도청구권) 배정 한도를 제한하고, 사모 CB의 리픽싱 하한을 낮게 설정하려면 정관 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다만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 시점은 계속 개정되고 있으므로, 특정 CB를 평가할 때는 발행 당시 적용된 규정을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또 하나는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입니다. 많은 CB에는 투자자가 일정 시점 이후 회사에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됩니다. 회사 주가가 전환가액을 한참 밑도는 상태가 이어지면, CB 투자자들은 주식 전환 대신 이 풋옵션을 행사해 원금과 약정 이자를 돌려받으려 합니다. 이는 회사 입장에서 예정에 없던 현금 유출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상황이 되는데, 재무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회사라면 이 풋옵션 행사가 실제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CB 잔액과 풋옵션 행사 가능 시점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CB 발행 기업을 볼 때 중요한 이유입니다.
CB 발행이 항상 나쁜 신호는 아니다
CB 발행을 무조건 악재로만 해석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조달한 자금이 신규 설비 투자나 유망 사업 확장처럼 향후 이익 성장으로 이어질 목적이라면, 시장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조달 목적이 "운영자금"처럼 당장의 현금 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면, 회사의 자체 자금 조달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읽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결국 CB 발행 공시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발행 자체의 호재·악재 여부를 단정하기보다, 조달 목적, 발행 규모가 기존 시가총액과 발행주식수 대비 얼마나 큰지, 전환가액과 리픽싱 조건, 그리고 풋옵션 행사 가능 시점을 함께 확인하는 것입니다.
정리
- 전환사채(CB)는 채권에 정해진 가격(전환가액)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이 결합된 증권으로, 이 옵션 가치 덕분에 표면이자가 매우 낮게, 때로는 0%로 발행될 수 있습니다.
- 리픽싱은 주가 하락 시 전환가액을 낮춰주는 투자자 보호 장치이지만, 전환 시 발행되는 주식 수를 늘려 기존 주주의 지분을 더 희석시키고, 이 우려가 전환 전부터 주가에 물량 부담으로 선반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CB는 전환 시 채권이 소멸하고, BW는 채권이 남은 채로 별도의 신주인수권만 행사되며, EB는 새 주식을 발행하지 않고 기존 보유 주식과 교환됩니다.
- 저가 CB를 이용한 지분 확대 논란과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으로 인한 유동성 부담은 CB를 볼 때 함께 확인해야 할 위험 요소입니다.
- CB 발행 소식은 조달 목적, 발행 규모, 전환가액·리픽싱 조건을 함께 읽어야 실제 호재·악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CB가 발행되면 주가는 무조건 떨어지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장은 대체로 잠재적 지분 희석과 리픽싱 물량 부담을 선반영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달 자금의 사용 목적이 명확한 성장 투자이고 발행 규모가 크지 않다면 반응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전환가액은 한 번 정해지면 끝까지 고정인가요?
아닙니다. 발행 조건에 리픽싱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주가 하락 시 계약된 산식과 하한선 안에서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규정에 따라 이후 주가가 오르면 전환가액을 다시 상향 조정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조건은 개별 CB의 발행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CB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CB도 결국 발행 회사의 신용을 바탕으로 한 채권이므로, 회사가 부도나 파산에 이르면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전환권과 풋옵션은 투자자에게 유리한 선택지를 제공할 뿐, 회사의 상환 능력 자체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