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111/111강 · 고급 · 4분 읽기
신용등급이란 무엇인가 — 무디스·S&P는 부도위험을 어떻게 점수로 매기는가
이 글의 목차
1917년 이후 처음 있는 일 — 미국이 결국 AAA를 다 잃었다
1917년 이후 한 번도 최고 등급을 놓친 적 없던 미국 국채가, 2011년 S&P에게서, 2023년 피치에게서, 그리고 2025년 5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무디스에게서마저 AAA(무디스 표기로는 Aaa)를 잃었습니다. 세 회사 모두 미국이 국채를 갚지 못할 것이라 본 게 아닙니다. 정부 부채와 이자 부담 비율이 비슷한 등급의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이유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국채조차 등급이 깎이는 이 과정을 보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신용등급이라는 알파벳 몇 글자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매기는 걸까요.
신용등급이란 무엇인가 — 부도 확률과 회수율을 압축한 숫자
신용등급은 특정 채무자(기업이나 국가)가 빌린 돈을 약속대로 갚을 가능성을 등급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신용등급은 그 회사의 주가가 오를지, 사업이 잘될지를 평가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오로지 "이 채권을 들고 있는 투자자가 원금과 이자를 제때 돌려받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 질문은 실제로는 두 요소로 나뉩니다. 하나는 부도 확률(이 채무자가 실제로 돈을 못 갚는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회수율(설령 부도가 나더라도 담보나 청산 절차를 통해 투자자가 되찾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입니다. 같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이라도 선순위냐 후순위냐, 담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부도 시 회수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뒤에서 볼 것처럼 등급도 채권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등급 체계 — 알파벳 22단계와 숫자 접미사 21단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S&P, 피치는 저마다 다른 표기법을 쓰지만 구조는 비슷합니다. S&P와 피치는 AAA를 최고 등급으로 두고 AA, A, BBB, BB, B, CCC를 거쳐 D(디폴트, 실제 채무불이행)까지 내려가며, AA부터 CCC까지는 세부적으로 +와 -를 붙여 총 22단계로 나눕니다. 무디스는 알파벳 대신 Aaa를 최상위로 두고 Aa, A, Baa, Ba, B, Caa를 거쳐 C까지 내려가며, Aa부터 Caa까지는 1·2·3 숫자를 붙여 21단계로 세분합니다(예: Aa1이 Aa2보다 한 단계 높은 식). 표기는 다르지만 실무에서는 S&P의 BBB+와 무디스의 Baa1을 같은 위치로, BBB-와 Baa3을 같은 위치로 취급합니다.
이 척도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BBB-(S&P·피치) 또는 Baa3(무디스) 바로 위와 아래입니다. 이 선 위쪽을 투자등급(investment grade), 아래쪽을 투기등급(speculative grade), 흔히 하이일드 또는 정크본드라고 부릅니다. 이 한 칸 차이가 실무에서 갖는 무게는 등급 자체의 의미보다 훨씬 큽니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일부 채권형 펀드는 내규나 감독 규정상 투자등급 채권만 편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채권이 BBB-에서 BB+로 단 한 칸만 떨어져도("추락천사", fallen angel이라 부릅니다) 이런 기관투자자들이 보유 규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일제히 매도에 나설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 9월 무디스가, 이어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 속에 S&P가 잇달아 포드(Ford)의 등급을 투기등급(무디스 Ba1, S&P BB+)으로 낮추면서 포드는 당시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추락천사가 됐고, 투자등급 채권만 담을 수 있던 대형 펀드들이 한꺼번에 포드 채권을 팔아치우며 가격이 등급 하락폭 이상으로 출렁였습니다. 신용 스프레드에서 다룬 것처럼, 등급이 낮을수록 투자자가 요구하는 금리 프리미엄(스프레드)도 구조적으로 벌어집니다.
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나 — 정량 지표와 정성 판단의 결합
평가사들은 재무제표에서 뽑아낸 정량 지표와, 숫자로 잘 잡히지 않는 정성 판단을 함께 씁니다. 정량 쪽에서는 이자보상배율, 부채비율, 영업현금흐름 대비 부채 비율, 업종 평균 대비 수익성 변동성 같은 항목을 본다는 점에서 알트만 Z-스코어가 참고하는 지표들과 상당 부분 겹칩니다. 다만 Z-스코어가 공개된 공식에 숫자를 넣어 기계적으로 점수를 내는 모델인 반면, 신용등급은 여기에 정성 판단을 더합니다. 산업의 구조적 경쟁 강도, 경영진의 재무정책 성향(공격적 인수합병을 선호하는지, 보수적으로 부채를 관리하는지), 지배구조 리스크, 모회사나 정부의 암묵적 지원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 애널리스트 위원회가 최종 등급을 결정합니다. 이 때문에 재무 숫자만 보면 비슷한 두 회사가 서로 다른 등급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신용등급이 through-the-cycle(경기 사이클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으로 매겨진다는 점입니다. 한 분기 실적이 나쁘다고 곧바로 등급을 낮추는 대신, 앞으로 몇 년간의 경기 변동을 감안했을 때도 이 채무자가 등급에 걸맞은 상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봅니다. 그래서 등급 조정은 주가나 CDS 프리미엄처럼 매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시장 가격보다 훨씬 느리고 신중하게, 대개 몇 달에서 1년 단위로 이뤄집니다.
노칭(Notching) — 같은 회사인데 채권마다 등급이 다른 이유
여기까지는 "이 회사(발행자)의 등급"을 다뤘지만, 실제로 한 회사가 여러 종류의 채권을 발행하면 채권별로 등급이 갈립니다. 이를 결정하는 원리가 노칭입니다. 출발점은 그 회사의 기준 등급(대개 선순위무보증채 등급)이고, 여기서부터 각 채권이 부도 시 얼마나 먼저, 얼마나 많이 회수될 수 있는지에 따라 등급을 위아래로 조정합니다. 무디스가 공개한 간이 가이드라인을 예로 들면, 기준을 선순위무보증채로 놓았을 때 담보가 잡힌 선순위담보채는 그보다 1노치 높게, 선순위무보증채보다 상환 순위가 밀리는 후순위채는 1노치 낮게, 우선주는 2노치 낮게 매겨지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의 기준 등급이 A라면, 같은 회사가 발행한 담보부 채권은 A+, 무담보 선순위채는 A, 후순위채는 A- 근처에서 매겨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노치 폭은 통상 ±2단계 안쪽으로 제한되지만, 회수 가능성 차이가 유독 크다고 판단되면 더 벌어지기도 합니다. 뉴스에서 "이 회사 등급이 A"라는 문장을 볼 때, 실제로는 그 회사가 발행한 여러 채권 중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신용등급 — 기업 등급의 천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신용등급은 정부가 자국 통화·외화 표시 채무를 갚을 능력을 평가한 등급으로, 재정 건전성, 경제 성장률, 정치적 안정성, 외환보유고, 대외부채 구조 등을 종합해 산출합니다. 앞서 본 미국 사례처럼 국가등급도 하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국가등급 상한(sovereign ceiling)입니다. 많은 신흥국에서는 그 나라 기업이 아무리 재무구조가 탄탄해도, 국경 간 송금 제한이나 외환위기 같은 국가 차원의 리스크에 함께 노출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자국 국가등급보다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원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해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해외 자산·현금흐름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 일부 다국적 기업은 예외적으로 자국 국가등급을 넘어서는 등급을 받기도 합니다.
이해상충 — 등급을 매기는 비용을 왜 피평가자가 내는가
신용평가 산업에는 구조적인 이해상충이 있습니다. 신용등급을 받는 기업이나 채권 발행자가 정작 그 등급을 매기는 평가사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발행자지급모델(issuer-pays model)이 업계 표준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평가사가 등급을 후하게 줄수록 발행자가 더 만족하고, 다음 채권 발행 때도 같은 평가사를 다시 찾을 유인이 생깁니다. 이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묶어 만든 구조화 상품 상당수가 실제 위험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등급을 받았고, 이는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자 대규모 등급 강등과 투자자 손실로 이어지며 위기를 증폭시킨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후 미국(도드-프랭크법)과 한국(2009년 신용정보법 개정) 모두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지만, 발행자가 평가 비용을 낸다는 근본 구조 자체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투자자들은 등급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CDS 프리미엄처럼 매일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 지표와 신용등급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 습관을 갖는 편이 안전합니다.
국내 회사채 시장 — 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국내 상장사가 원화로 발행하는 회사채나 기업어음은 무디스·S&P가 아니라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같은 국내 신용평가사가 매긴 등급을 주로 씁니다. 등급 표기 체계는 AAA부터 D까지, AA~B 구간에서 +와 -를 붙이는 방식으로 해외 3대사와 유사하지만, 평가 대상이 원화 표시 국내 채무이기 때문에 외화 표시 채권에 적용되는 무디스·S&P의 국가등급 상한과는 별개로 움직입니다. 자본구조 이론(모딜리아니-밀러)에서 살펴본 것처럼, 등급이 한 단계만 떨어져도 그 회사가 다음에 채권을 발행할 때 지급해야 하는 금리가 즉각 올라가므로, 국내 신평사의 등급 조정 발표는 LBO처럼 부채 비중이 높은 거래의 조달 비용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정리
- 신용등급은 채무자가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을 수 있는지를 부도 확률과 회수율로 압축해 표시한 등급이며, 주가나 사업 전망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 S&P·피치는 AAA~D 22단계, 무디스는 Aaa~C 21단계 척도를 쓰며, BBB-/Baa3을 경계로 투자등급과 투기등급(정크본드)이 갈립니다.
- 등급은 이자보상배율 등 정량 지표와 산업·경영진 판단 같은 정성 요소를 결합해 매기며, 단기 실적 변동보다 경기 사이클 전체를 보는 through-the-cycle 관점을 취합니다.
- 노칭 원리에 따라 담보 유무와 상환 순위(선순위담보·선순위무보증·후순위)에 따라 같은 회사의 채권도 서로 다른 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발행자가 평가 비용을 내는 이해상충 구조는 2008년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국내 회사채는 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신평사 등급을 주로 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신용등급이 높으면 그 회사 주식도 좋은 투자인가요?
아닙니다. 신용등급은 채권 투자자가 원리금을 돌려받을 가능성만을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재무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라 등급이 높아도 성장성이 낮아 주가는 정체된 회사가 있는가 하면, 등급이 낮은 성장기업의 주가가 크게 오르는 경우도 흔합니다. 채권 투자자와 주식 투자자가 같은 회사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무디스·S&P·피치의 등급이 서로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있습니다. 이를 '스플릿 등급(split rating)'이라 부르며, 각 평가사가 산업 리스크나 재무정책을 다르게 해석할 때 발생합니다. 투자등급과 투기등급의 경계에 걸친 회사일수록 스플릿 등급이 나오는 경우가 잦아, 한 기관의 등급만 보기보다 여러 평가사의 등급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는 무조건 피해야 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투기등급 채권은 부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신 그만큼 높은 금리(스프레드)를 제공하며, 일부 기관투자자는 이 영역을 별도 자산군으로 편입해 분산 투자합니다. 다만 개인 투자자가 개별 정크본드를 직접 고르는 것은 부도 시 원금 손실 위험이 크므로, 이자보상배율 같은 지표로 상환 능력을 함께 점검하거나 분산된 하이일드 펀드를 활용하는 편이 일반적으로 더 안전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이며 특정 채권이나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신용등급 체계와 평가 방법론은 평가사별로, 그리고 시점별로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투자 판단 전 해당 신용평가사와 발행사의 최신 공시 자료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