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121/121강 · 고급 · 4분 읽기
다이렉트 리스팅이란 무엇인가 — IPO 없이 상장하는 원리
이 글의 목차
상장에 반드시 IPO가 필요한가
공모가는 어떻게 정해지나에서는 수요예측(북빌딩)을 거쳐 공모가가 확정되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상장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2018년 스포티파이, 2019년 슬랙, 2021년 코인베이스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이들은 증권신고서를 내고 거래소에 상장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기업과 같지만, 공모가를 정하지도 않았고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방식을 다이렉트 리스팅(direct listing, 직상장)이라 부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다이렉트 리스팅이 일반 IPO와 구조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왜 어떤 회사는 굳이 이 길을 선택하는지를 다룹니다.
다이렉트 리스팅의 핵심 — 언더라이터도, 신주도 없다
일반 IPO에서는 증권사(언더라이터)가 중심에 섭니다. 회사의 가치를 평가해 희망공모가 밴드를 제시하고,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수요예측을 진행하며, 공모 물량을 인수해 투자자에게 배정하고, 상장 직후 일정 기간 동안 매수 개입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초과배정옵션(그린슈)까지 운용합니다. 다이렉트 리스팅은 이 과정 전체를 건너뜁니다. 회사는 투자은행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상장 절차를 자문받기는 하지만, 그 투자은행이 공모가를 책정하거나 물량을 인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차이로, 원래 형태의 다이렉트 리스팅에서는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거래소에 올라오는 물량은 창업자, 임직원, 초기 투자자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주식뿐입니다. 즉 시장에서 매매되는 주식의 총수는 상장 전후로 변하지 않고, 누가 그 주식을 들고 있는지만 바뀌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전통적 다이렉트 리스팅은 회사에 새로운 자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상장 방식이었습니다.
가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나 — 레퍼런스 프라이스와 개장 경매
IPO는 상장 전날 밤 공모가가 숫자로 미리 확정됩니다. 다이렉트 리스팅에는 이런 확정 공모가 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거래소(뉴욕증권거래소 기준으로는 지정시장조성자, DMM)가 상장 전날 비교기업 밸류에이션과 투자은행의 평가를 참고해 레퍼런스 프라이스(reference price)라는 참고 가격을 제시합니다. 다만 이 가격에서 실제로 거래가 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상장 당일 장이 열리기 전, 매수·매도 양쪽의 주문을 모아 수급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시가가 결정되는 개장 경매(opening auction) 절차를 거쳐야 실제 첫 거래가격이 나옵니다. 이 경매 결과는 레퍼런스 프라이스보다 훨씬 높게 열릴 수도, 낮게 열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포티파이는 레퍼런스 프라이스가 1주당 132달러로 제시됐지만 첫 거래는 165.90달러에서 시작됐고, 슬랙은 레퍼런스 프라이스 26달러에 비해 38.50달러에서 거래를 열었습니다. IPO의 공모가가 "이 가격에 팔겠다"는 사전 약속이라면, 다이렉트 리스팅의 레퍼런스 프라이스는 "대략 이 근처에서 거래될 것"이라는 참고치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다이렉트 리스팅 상장 첫날의 수익률은 IPO처럼 "공모가 대비 종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의미가 왜곡되기 쉽고, 대신 개장 경매 체결가 대비 종가를 기준으로 봐야 실제 수급 변화를 더 정확히 읽을 수 있습니다.
2020년 규정 변화 — 신주도 팔 수 있는 다이렉트 리스팅
전통적 다이렉트 리스팅의 가장 큰 약점은 회사가 자금을 전혀 조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금이 충분한 대형 유니콘 기업이 아니면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한계는 2020년 8월 뉴욕증권거래소가 제안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승인한 규정 변경으로 달라졌습니다. 이른바 "자금조달형 다이렉트 리스팅(primary direct listing)"이 허용되면서, 회사는 개장 경매에서 기존 주주의 매도 물량과 함께 신주도 직접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뉴욕증권거래소는 이 경우 경매에서 최소 1억 달러 이상의 공모 유통 물량이 형성돼야 한다는 조건을 둡니다. 이 규정 변경 이후 대표적으로 로블록스가 2021년 신주 발행을 포함한 다이렉트 리스팅으로 상장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바뀌어도 가격을 사전에 확정하지 않고 경매로 정한다는 점, 수요예측·언더라이터 인수 절차가 없다는 점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신주 발행 여부"가 IPO와 다이렉트 리스팅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락업이 없다는 것의 양면 — 즉시 유동성과 매도 폭탄 리스크
IPO 락업(보호예수)에서 다뤘듯이, 일반 IPO에서는 창업자·임직원·초기 투자자가 보통 90일에서 180일에 이르는 의무보유 기간 동안 주식을 팔 수 없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는 날 대량 매물이 쏟아지는 "오버행" 현상이 생기는 이유도 이 계약 때문입니다. 다이렉트 리스팅에는 이런 계약상 락업 자체가 없습니다. 기존 주주는 상장 첫날부터 원하는 만큼 주식을 팔 수 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회사 주식에 묶여 있던 임직원과 초기 투자자에게는 분명한 장점입니다.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을 손에 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IPO에서는 그린슈 옵션을 통해 언더라이터가 상장 직후 일정 기간 매수 개입으로 주가 급락을 막아주는 안전판이 있지만, 다이렉트 리스팅에는 이런 가격 안정화 장치 자체가 없습니다. 락업으로 묶여 있던 물량이 한꺼번에 풀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상장 초기 주가 변동성이 일반 IPO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구조적인 위험 요인으로 꼽힙니다.
숫자로 보는 예시
가상의 소프트웨어 기업 G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G사는 이미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신규 자금 조달이 급하지 않지만, 10년 가까이 스톡옵션으로 묶여 있던 임직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상장의 주된 목적입니다. G사가 일반 IPO를 택했다면, 언더라이터가 희망밴드를 제시하고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가 30달러가 확정되고, 임직원 보유 물량은 180일 락업에 묶였을 것입니다. 대신 G사는 다이렉트 리스팅을 선택합니다. 거래소는 레퍼런스 프라이스로 32달러를 제시하지만, 상장 당일 개장 경매에서 매수 주문이 몰리며 첫 거래가는 45달러에서 형성됩니다. 임직원들은 락업 없이 상장 당일부터 바로 주식을 매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초반 거래일 동안 매물이 집중되며 주가가 45달러에서 며칠 만에 36달러까지 밀리는 변동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예시가 보여주는 것은, 다이렉트 리스팅이 "더 좋은 가격" 또는 "더 나쁜 가격"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격 결정과 매도 압력의 구조 자체가 IPO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어떤 회사가 다이렉트 리스팅을 선택하는가 — IPO와의 비교
다이렉트 리스팅은 모든 기업에 열려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스포티파이, 슬랙, 팔란티어, 코인베이스처럼 이미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공모 마케팅이 따로 필요 없고, 신규 자금 조달의 긴급성이 낮으며, 기존 주주의 즉시 유동성 확보가 핵심 목표인 대형 비상장 유니콘 기업들이 주로 택해온 방식입니다. 반대로 사업 초기 단계라 신규 자금이 꼭 필요하거나, 아직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아 기관투자자 대상 로드쇼와 수요예측을 통해 가치를 알려야 하는 회사라면 일반 IPO가 더 적합합니다. 비용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IPO는 언더라이터에게 공모 금액의 상당 부분을 인수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지만, 다이렉트 리스팅은 이 인수 수수료가 없어 상장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대가로 가격 안정화 장치와 기관 수요 기반 확보라는 IPO의 장점도 함께 포기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2020~2021년 다이렉트 리스팅이 한때 주목받았지만, 이후 몇 년간 신규 다이렉트 리스팅 건수는 전통적 IPO에 비해 여전히 소수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격 안정화 장치가 없는 구조가 변동성이 큰 시장 환경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로드쇼와 수요예측 과정 자체가 잠재 투자자에게 회사를 설명하고 신뢰를 쌓는 기회로도 쓰이기 때문에, 상장 전 인지도가 충분하지 않은 기업일수록 이 과정을 생략하기 어렵다는 점도 다이렉트 리스팅이 여전히 소수에 머무는 이유로 꼽힙니다.
한국에는 왜 없는가
한국거래소(KRX)의 유가증권시장·코스닥 상장 규정에는 미국식 다이렉트 리스팅에 해당하는 상장 트랙 자체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내 상장은 신주 모집이든 구주 매출이든 증권신고서 제출, 대표주관사 선정, 수요예측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도록 설계되어 있어, 언더라이터 인수 절차 자체를 생략하는 미국식 구조와는 제도적 전제가 다릅니다. 학계와 자본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락업 없는 유동성을 원하는 국내 유니콘 기업을 위해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나오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우려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주식 투자자에게 왜 중요한가
다이렉트 리스팅으로 상장한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 있다면, 공모가라는 기준점 자체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레퍼런스 프라이스는 어디까지나 참고치일 뿐이므로, 실제 첫 거래가가 이보다 훨씬 높거나 낮게 형성될 수 있다는 변동성을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락업이 없다는 사실은 상장 초기 며칠, 몇 주 동안 내부자 매도 물량이 예고 없이 쏟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린슈 옵션 같은 가격 안정화 장치가 없는 만큼, 상장 직후의 가격 움직임만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판단하기보다는 몇 분기치 실적과 공시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아울러 다이렉트 리스팅 기업은 대규모 공모 마케팅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IPO 기업보다 증권사 리서치 커버리지가 상장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얇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만합니다.
정리
- 다이렉트 리스팅은 언더라이터의 공모가 책정·수요예측·물량 인수 절차 없이,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거래소 상장만으로 매매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 가격은 사전 확정된 공모가가 아니라 거래소가 제시하는 참고용 레퍼런스 프라이스와, 상장 당일 개장 경매로 결정됩니다.
- 2020년 뉴욕증권거래소 규정 변경 이후에는 신주 발행을 포함한 "자금조달형 다이렉트 리스팅"도 가능해졌습니다(로블록스 등).
- 계약상 락업이 없어 임직원·초기 투자자는 상장 즉시 유동성을 얻지만, 가격 안정화 장치도 없어 초기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자금 조달이 급하지 않은 대형 비상장 기업이 주로 선택하며, 한국에는 아직 이에 해당하는 상장 제도가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다이렉트 리스팅으로 상장하면 회사는 돈을 전혀 못 받나요?
전통적인 다이렉트 리스팅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2020년 뉴욕증권거래소 규정 변경 이후에는 개장 경매에서 신주를 함께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자금조달형 다이렉트 리스팅"도 가능해졌습니다. 로블록스가 이 방식으로 상장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레퍼런스 프라이스와 실제 첫 거래가는 왜 차이가 날 수 있나요?
레퍼런스 프라이스는 거래소가 비교기업 밸류에이션 등을 참고해 제시하는 사전 참고치일 뿐, 실제 체결가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실제 가격은 상장 당일 개장 경매에서 매수·매도 주문이 맞물려 결정되므로, 수급 상황에 따라 레퍼런스 프라이스보다 크게 높거나 낮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다이렉트 리스팅 기업에 투자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락업이 없어 내부자 매도 물량이 예고 없이 쏟아질 수 있다는 점과, 그린슈 옵션 같은 가격 안정화 장치가 없어 상장 초기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장 직후 며칠간의 주가 흐름만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이후 발표되는 실적과 공시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추천이 아닙니다. 본문에 언급된 기업 사례와 수치는 과거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했으며, 가상의 수치 예시는 실제 상장 결과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