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138/138강 · 고급 · 4분 읽기
패시브 투자의 구조적 위험이란 — 가격발견 기능 저하와 의결권 집중 논쟁
이 글의 목차
전세계 상장사 주주명부를 열면 자꾸 같은 세 이름이 나온다
미국 대형 상장사 수백 곳의 주주명부 상위권을 열어보면 업종과 무관하게 거의 항상 같은 세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 — 이른바 '빅3' 자산운용사입니다. 은행도, 항공사도, 반도체 기업도, 심지어 서로 경쟁하는 회사들조차 상위 주주 명단에 똑같은 세 회사가 동시에 올라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들이 이 기업들의 주식을 직접 골라서 산 것이 아니라, ETF와 인덱스펀드에 돈을 맡긴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다 보니 벌어진 결과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렇게 패시브 자금이 전세계 증시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제기되는 두 가지 구조적 논쟁 — 가격발견 기능이 약해진다는 우려와, 소수 운용사에 의결권이 집중된다는 우려 — 을 살펴봅니다. 둘 다 학계와 규제당국 사이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은 진행 중인 논쟁이라는 점을 먼저 짚어둡니다.
패시브 자금이 이렇게 커진 이유
ETF란 무엇인가에서 다뤘듯,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상품은 개별 종목을 분석할 필요 없이 시장 전체 수익률에 낮은 비용으로 올라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난 수십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효율적 시장가설에서 설명한 것처럼, 액티브 매니저가 꾸준히 시장 평균을 이기기 어렵다는 실증 연구가 쌓일수록 "그냥 지수를 사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대 중반 기준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 세 회사가 합산으로 운용하는 자산은 20조 달러를 훌쩍 넘는 규모로 불어났고, 미국 대형주 중심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의 합산 보유 비중은 상당수 S&P500 기업에서 20%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여러 연구가 추정합니다. 문제는 이 자금이 그 회사의 실적이나 전망을 판단해서 들어온 돈이 아니라, 그 회사가 "지수에 속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계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돈이라는 점입니다.
첫 번째 논쟁 — 가격발견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
주식시장이 제 역할을 하려면 좋은 회사의 주가는 오르고 나쁜 회사의 주가는 내려야 합니다. 이 과정을 경제학에서는 가격발견(price discovery)이라 부르는데, 전통적으로는 펀더멘털을 분석하는 액티브 투자자들이 저평가 종목을 사고 고평가 종목을 팔면서 이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그런데 패시브 자금은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지수 편입·편출 효과에서 다뤘듯, 인덱스펀드와 ETF는 그 회사의 미래를 판단하지 않고 오직 지수 내 비중에 맞춰 사고팝니다. 이 돈의 비중이 시장 전체에서 작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패시브 자금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커지면 "지수에 더 많이 담긴 종목일수록 가격과 무관하게 더 많은 돈이 몰린다"는 자기강화적 흐름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빅쇼트'로 유명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2019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흐름을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돈이 몰렸던 부채담보부증권(CDO) 매입 광풍에 비유하며, 패시브 자금 유입 자체가 개별 종목과 채권 가격을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이 비유는 어디까지나 버리 개인의 주장이며, 실제로 패시브 비중 확대가 가격발견 기능을 얼마나 훼손했는지를 둘러싼 실증 연구는 결론이 엇갈립니다. 일부 연구는 지수 편입 종목일수록 주가가 펀더멘털과 느슨하게 움직인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만, 다른 연구는 액티브 투자자들이 여전히 충분히 남아 있어 가격발견 기능이 뚜렷이 나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을 내놓습니다. 즉 이 논쟁은 "패시브 비중이 늘면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변하는가"라는, 아직 정설이 없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두 번째 논쟁 — 공동소유와 의결권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우려
패시브 자금이 커지면서 생기는 또 다른 구조적 특징은, 서로 경쟁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같은 운용사가 동시에 대량으로 들고 있는 공동소유(common ownership) 현상입니다. 학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2017년 피히트너·히임스커르크·가르시아베르나르도의 연구는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 세 회사가 S&P500에 속한 기업의 약 88%에서 단독 최대주주이거나 공동 최대주주 그룹에 속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이 수치는 2017년 당시 기준이고 그 이후 세 회사의 운용자산이 더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현상이 왜 문제로 지목되는지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경제학자와 반독점 당국의 우려로, 같은 운용사가 서로 경쟁하는 두 항공사나 은행의 주식을 동시에 대량으로 쥐고 있으면 그 운용사 입장에서는 두 회사가 적극적으로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업종 전체의 수익성을 유지하는 쪽을 선호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기업 인수합병을 심사할 때 당사 기업들의 최대주주가 누구인지, 그 주주가 경쟁사에도 동시에 큰 지분을 갖고 있는지를 점점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도 일부 기업 결합 심사에서 공동소유가 논거로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업 지배구조 측면의 우려로, 수만 개 기업의 주주총회 표결을 사실상 세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팀이 좌우한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 기업들을 실제로 통제하는 손이 지나치게 소수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분명합니다. 빅3는 대부분의 안건에서 경영진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경향이 강하고, 개별 기업 지분율도 대개 10% 미만의 소수주주에 그치기 때문에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비판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제한적이라는 주장입니다. 블랙록은 일부 고객이 직접 자신의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이런 비판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동소유 논쟁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실증 사례는 미국 항공업계입니다. 호세 아사르 등의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연구는 같은 노선을 두고 경쟁하는 항공사들을 같은 운용사가 동시에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을수록 그 노선의 항공권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 연구는 공동소유가 가격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자주 인용되지만, 다른 경제학자들은 분석 방법론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반박하면서 같은 데이터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재현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즉 이 사례 하나만으로 공동소유가 실제로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지금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방법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 효과 — 지수에 함께 묶인 종목들의 동조화
상관계수와 분산투자에서 다뤘듯, 분산투자의 효과는 보유 종목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커집니다. 그런데 패시브 자금은 어떤 종목이 좋은 회사인지가 아니라 어떤 지수에 함께 속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꺼번에 사고팝니다. 그 결과 같은 지수에 속한 종목들은 개별 실적과 무관하게 패시브 자금의 순유입·순유출 타이밍에 맞춰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어떤 종목이 그 지수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종목의 수익률을 다른 지수 구성 종목들과 더 비슷하게 만드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효과가 누적되면 개별 종목을 여러 개 담아도 체감하는 분산 효과가 기대보다 작아질 수 있다는 점이, 패시브 투자 확산이 가져오는 세 번째 구조적 변화로 거론됩니다.
한국 투자자와 무슨 상관인가
이 논쟁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 투자자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환율과 외국인 수급의 관계에서 다뤘듯 한국 증시에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 중 상당 부분은 MSCI나 FTSE 같은 글로벌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이고, 이 자금은 개별 한국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그 지수 내 한국 비중 조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들어오고 나갑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ETF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소수의 대형 운용사가 국내 상장 ETF 시장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고, 국민연금 리밸런싱에서 다룬 국민연금의 기계적 자산배분 조정도 비슷한 성격의 '펀더멘털과 무관한 대규모 수급'이라는 점에서 같은 범주의 논의로 이어집니다. 즉 이 강의에서 다루는 구조적 논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증시에 들어오고 나가는 자금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되는 틀입니다.
투자자가 이 논쟁에서 가져가야 할 태도
이 논쟁을 안다고 해서 "그러니 패시브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저비용으로 시장 전체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패시브 투자의 핵심 장점은 이 논쟁과 별개로 여전히 유효하고, 가격발견 기능 저하나 공동소유 문제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학계의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구조를 알아두면 두 가지가 명확해집니다. 첫째, "지수에 편입됐다"거나 "패시브 자금이 몰린다"는 뉴스 자체는 그 회사의 펀더멘털이 좋아졌다는 신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 전체가 소수의 거대 운용사가 설계한 몇 개 지수의 흐름에 점점 더 많이 좌우되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개별 종목 분석만큼이나 "지금 내 수익률이 내가 고른 종목 때문인지, 아니면 그 종목이 속한 지수 전체가 움직였기 때문인지"를 구분해서 볼 줄 아는 안목을 요구합니다. 이는 특정 매매 신호로 쓸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왜 시장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합니다.
정리
-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 '빅3' 자산운용사는 패시브 펀드·ETF를 통해 합산 20조 달러 이상을 운용하며, 상당수 S&P500 기업에서 동시에 상위 주주 지위를 갖는 공동소유 구조를 만들어냈다.
- 첫 번째 논쟁은 가격발견 기능 저하다. 패시브 자금은 펀더멘털 판단 없이 지수 비중에 맞춰 기계적으로 매매하며, 마이클 버리는 이를 2008년 CDO 매입 광풍에 비유했지만 실증적 결론은 아직 엇갈린다.
- 두 번째 논쟁은 공동소유와 의결권 집중이다. 소수 운용사가 경쟁 기업들의 주식을 동시에 대량 보유하면 경쟁 완화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반독점 우려와, 대부분 경영진 안건에 찬성표를 던져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반론이 함께 존재한다.
- 세 번째로, 같은 지수에 속한 종목들은 패시브 자금의 공통된 매매 타이밍 때문에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동조화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어, 체감하는 분산 효과가 기대보다 줄어들 수 있다.
- 이 구조는 한국 증시로 들어오는 외국인 패시브 자금이나 국민연금의 기계적 리밸런싱과도 연결되는 논의이며, 특정 매매 신호가 아니라 시장이 움직이는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패시브 투자가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여기서 다룬 논쟁은 패시브 투자 "상품" 자체의 위험이 아니라, 패시브 자금이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시장 구조에 생기는 변화에 대한 논쟁입니다. 저비용으로 분산된 수익률을 얻는다는 개별 투자자 입장의 장점은 이 논쟁과 별개로 유효합니다.
블랙록 같은 대형 운용사가 실제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나요?
공개적인 주주총회 표결에서는 대부분 경영진 제안에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비공개 경영진 면담이나 스튜어드십 보고서를 통한 비공식적 소통이 있다는 점이 학계에서 '숨은 권력'이라는 표현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 영향력의 실제 크기를 둘러싼 평가는 연구자와 운용사 사이에서도 엇갈립니다.
개인 투자자가 이 구조를 피할 방법이 있나요?
특정 종목에 집중하거나 액티브 펀드를 선택한다고 해서 이 구조적 논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 전체가 이미 패시브 자금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강의의 목적은 회피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수 관련 뉴스와 수급을 펀더멘털 변화와 구분해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언급된 수치와 연구 결과는 발표 시점의 추정치이며, 실제 현재 수치는 운용사 공시와 최신 연구를 통해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