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86/89강 · 고급 · 4분 읽기

상환전환우선주(RCPS)란 무엇인가 — 자본과 부채 사이에서 자본잠식을 만드는 원리

상환전환우선주란 무엇인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은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투자한 회사가 성공하면 지분을 갖고 있어야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보통주 투자자는 청산 순위에서 가장 뒤로 밀려 한 푼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상환전환우선주(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입니다. 이름 그대로 두 가지 권리가 하나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상환권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 회사가 상장하거나 인수합병 같은 투자 회수(exit) 기회가 오지 않으면, 투자자가 회사에 원금과 약정된 이자 성격의 금액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전환권은 반대로 회사가 잘돼서 상장을 앞두고 있다면,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꿔 주가 상승분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즉 투자자 입장에서는 "잘되면 주식으로 먹고, 안되면 빌려준 돈처럼 돌려받는" 양방향 안전장치를 손에 쥐는 셈입니다.

회사(창업자) 입장에서도 RCPS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당장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은행 대출과 달리 현금흐름 부담이 없고, 초기 저평가된 가격에 보통주를 대거 넘기는 것보다 경영권 희석도 덜합니다. 동시에 투자자에게는 하방 리스크를 보장해주므로 밸류에이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벤처투자 라운드의 상당수가 보통주가 아니라 RCPS 형태로 이뤄집니다.

왜 회계상으로는 '부채'가 되는가

여기서부터가 이 주식의 진짜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RCPS는 이름에 '우선주'가 들어가고 법적으로도 주식이지만, 한국 상장기업과 다수의 대형 비상장기업이 따르는 국제회계기준(K-IFRS 제1032호)에서는 자본이 아니라 금융부채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 판단 기준은 단 하나, "회사가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계약상 피할 수 없는가"입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법적 형식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하면 회사가 현금으로 돌려줘야 하는 구조라면, 그 순간 이 증권은 실질적으로 만기가 있는 빚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 스타트업 투자 관행 특유의 조건이 하나 더 얹어집니다. 바로 리픽싱(전환가액 재조정) 조항입니다. 다음 투자 라운드가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가격에 이뤄지면(다운라운드), 기존 RCPS 투자자의 전환 비율을 유리하게 재조정해주는 조건이 흔히 붙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환 시 받게 될 주식 수가 애초에 고정돼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되는데, K-IFRS는 이런 '고정 수량으로 확정되지 않은' 전환권을 자본의 요건(이른바 fixed-for-fixed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부채 쪽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참고로 비상장기업이 흔히 쓰는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에서는 같은 RCPS라도 자본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 이 회계기준의 차이 자체가 뒤에서 다룰 'IPO 회계 절벽'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이런 이분법적 판단 때문에 실무에서는 같은 성격의 RCPS를 놓고도 발행 조건에 따라 일부는 자본으로, 일부는 부채로 나뉘어 처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상환권이 붙은 부분과 전환권만 있는 부분을 나눠 각각 부채·자본으로 인식하는 방식이 쓰이기도 하는데, 이 구분 기준을 놓고 회계업계 안에서도 해석이 엇갈려 같은 시기 비슷한 규모로 RCPS를 발행한 두 회사가 서로 다른 처리 결과를 공시하는 사례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RCPS의 회계 처리는 정해진 정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기보다, 계약서에 담긴 구체적인 상환·전환 조건을 하나하나 뜯어봐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숫자로 보는 예시

가상의 사례로 감을 잡아보겠습니다. B사가 시리즈 B 라운드에서 RCPS로 300억 원을 유치했다고 해봅시다. 이 거래로 B사의 현금(자산)은 300억 원 늘어나지만, 상환권이 살아있는 만큼 같은 300억 원이 금융부채로도 동시에 잡힙니다. 만약 이 투자를 받기 전 B사의 자본총계가 50억 원이었고 별다른 다른 변동이 없었다면, 투자 이후 자본총계는 오히려 250억 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거나, 상환권에 딸린 이자성 비용(우선배당 성격의 상환할증금)이 매년 부채로 누적 인식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잠식 폭이 더 벌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 회사가 상장을 앞두고 투자자와 협의해 RCPS 전량을 보통주로 전환한다면, 그 순간 300억 원(과 그동안 누적된 상환할증금)이 부채에서 자본으로 한꺼번에 옮겨가면서 자본총계가 큰 폭으로 개선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같은 회사, 같은 현금 300억 원인데도 '상환권이 살아있는가, 사라졌는가' 하나로 재무제표의 얼굴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RCPS, 전환사채(CB), 보통주 — 무엇이 다른가

스타트업이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수단은 RCPS 외에도 여러 가지이고, 회계 처리와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서로 다릅니다.

구분 법적 형식 투자자의 하방 보호 통상적인 회계 분류
RCPS 우선주(지분증권) 상환권으로 원금 회수 가능 부채(상환권 존재 시)
전환사채(CB) 채권(확정 만기·이자) 원리금 상환청구권 부채(전환권 분리 시 일부 자본)
보통주 지분증권 없음(청산 후순위) 자본

전환사채는 애초에 '채권'이라는 이름 그대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을 권리가 법적으로 명확해 부채로 분류되는 데 이견이 적습니다. 반면 RCPS는 법적 형식은 지분증권(우선주)인데 실질은 상환의무가 있는 채권에 가깝다는 점에서, 형식과 실질이 어긋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보통주는 이런 상환의무 자체가 없으므로 별다른 논쟁 없이 자본으로 분류됩니다. 이 표를 보면 RCPS가 왜 'CB보다는 주식에 가깝지만, 보통주보다는 훨씬 채권에 가까운' 애매한 위치에 있는 증권인지가 드러납니다.

멀쩡한 회사가 '자본잠식'으로 보이는 이유

이 회계 처리가 실제로 투자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점은,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아 현금이 두둑한 회사가 재무제표상으로는 자본잠식(자본총계가 마이너스) 상태로 표시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RCPS로 유치한 투자금은 현금(자산)으로 들어오지만, 동시에 같은 금액만큼 금융부채로도 잡힙니다. 부채가 늘어나는 만큼 회계상 '자본총계 = 자산 – 부채' 공식에서 자본 쪽이 오히려 줄어드는 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누적 투자금 규모가 커질수록 회계상 자본잠식 폭도 함께 커지는, 직관과 어긋나는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이런 사례가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헤이딜러 운영사인 피알앤디컴퍼니는 연결 기준 자본총계가 큰 폭의 마이너스 상태였다가 다음 해 그 적자 폭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도됐는데, 이는 영업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IPO를 준비하며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조건을 변경해 부채에서 자본으로 재분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같은 회사, 같은 현금 사정인데 '어떤 증권으로 얼마를 조달했는가'와 '그 증권의 조건이 무엇인가'만 바뀌어도 재무제표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RCPS 비중이 큰 비상장·상장 예정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때는 자본잠식이라는 숫자 하나만 보고 놀라기보다, 그 부채가 실제 만기가 임박한 이자부 차입금인지 아니면 상환 조건이 까다로운 RCPS인지, 그리고 회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현금(유동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IPO를 앞두고 벌어지는 '회계 절벽'

RCPS의 부채성은 회사가 상장을 준비하는 순간 가장 첨예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한국거래소는 통상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기 전에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강하게 권고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 상환권이 살아있는 복잡한 우선주가 상장 이후에도 발행주식 상태로 남아 있으면 일반 투자자가 그 조건(상환가, 상환 가능 시점)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예기치 못한 주가 변동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앞서 본 것처럼 비상장 시절 K-GAAP으로는 자본이었던 항목이 상장기업 의무 기준인 K-IFRS로 전환되는 순간 부채로 재분류되면서 부채비율이 갑자기 치솟는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스타트업은 상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RCPS 보유자들과 협상해 상환권을 포기시키거나 보통주로 일괄 전환시킵니다. 이 전환이 이뤄지는 순간 회사는 현금을 지급해야 할 계약상 의무 자체가 사라지므로, 그만큼의 금액이 부채에서 자본으로 한 번에 옮겨갑니다. 자산이나 현금 상황은 전혀 바뀐 게 없는데도 재무제표상 부채비율과 자본총계가 상장 시점을 전후로 극적으로 개선되는 이른바 '회계 절벽(accounting cliff)'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런 구조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상환전환우선주(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를 발행한 스타트업들이 상장과 동시에 이를 보통주로 자동 전환하도록 정관에 명시해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다만 리픽싱 조항이 얽힌 K-IFRS 특유의 부채 판정 강도는 한국 시장에서 더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이 문제는 규제 산업에서는 상장 이전 단계에서도 훨씬 예민하게 작용합니다. 핀테크처럼 자기자본비율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는 업종은 RCPS가 부채로 잡히는 순간 규제상 요구되는 자본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투자받은 현금이 고스란히 계좌에 남아 있는데도, 회계 분류 하나 때문에 규제당국이 요구하는 자본비율 문턱을 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핀테크·금융 관련 스타트업일수록 RCPS 대신 보통주 투자나 상환권이 없는 조건으로 협상하려는 유인이 더 큽니다.

정리

  • RCPS는 상환권(투자자가 원금 회수를 요구할 권리)과 전환권(보통주로 전환해 상승분을 누릴 권리)이 결합된 주식으로, VC가 하방을 방어하면서도 상방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입니다.
  • K-IFRS 제1032호는 법적 형식이 아니라 "회사가 현금 지급 의무를 계약상 피할 수 없는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상환권이 살아있는 RCPS는 자본이 아니라 금융부채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여기에 다운라운드 시 전환 비율이 바뀌는 리픽싱 조항이 붙으면 전환권도 fixed-for-fixed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채 분류가 강화됩니다.
  • 투자금이 현금(자산)과 동시에 부채로 잡히는 구조 때문에, 실제로는 현금이 두둑한 회사도 장부상 자본잠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이는 실적 악화가 아니라 회계 분류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 상장을 앞두고 RCPS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부채 의무가 사라지면서 부채비율이 급격히 개선되는 '회계 절벽'이 나타나는데, 이는 K-GAAP과 K-IFRS의 분류 차이가 상장 시점에 한꺼번에 정산되는 결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RCPS가 부채로 잡히면 그 회사는 정말 위험한 상태인가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이유가 실제 이자를 못 갚을 위험 때문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부여된 상환권이라는 계약 조건 자체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잠식이라는 숫자만 보기보다, 실제 보유 현금과 그 부채의 상환 조건(만기, 상환 트리거)이 무엇인지를 함께 확인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합니다.

RCPS와 일반 우선주는 무엇이 다른가요?

우선주와 보통주에서 다룬 일반 우선주는 배당 우선권 정도만 갖고 상환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본으로 분류됩니다. RCPS는 여기에 투자자가 회사에 현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이 추가로 붙어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며, 바로 이 상환권 때문에 회계상 부채로 취급됩니다.

상장 후에도 RCPS가 남아있을 수 있나요?

한국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전에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강하게 권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정상적으로 상장한 기업의 유통주식 중에는 상환권이 살아있는 RCPS가 남아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다만 상장 심사 과정이나 그 이전 단계의 재무제표를 볼 때는 RCPS 존재 여부와 전환 계획을 확인해두는 것이 유용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이며 특정 종목·기업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사례는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설명이며, 실제 회계 처리는 개별 계약 조건과 감사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