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84/89강 · 고급 · 4분 읽기
실러 PER(CAPE)란 무엇인가 — 10년 평균 이익으로 경기순환을 걸러내는 밸류에이션 지표
이 글의 목차
일반 PER이 경기 전환점에서 흔들리는 이유
PER·PBR·PSR에서 다룬 것처럼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가장 널리 쓰이는 밸류에이션 지표입니다. 그런데 이 지표에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분모로 쓰는 이익이 단 1년치라는 점입니다. 경기가 정점을 찍을 때는 기업 이익도 함께 정점을 찍어 PER이 실제보다 훨씬 싸 보이게 만들고, 반대로 경기침체로 이익이 급감하는 시기에는 PER이 순식간에 치솟아 실제보다 훨씬 비싸 보이게 만듭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여러 기업의 PER이 세 자릿수까지 튀어 오른 것도 주가가 특별히 비쌌기 때문이 아니라, 분모인 이익이 일시적으로 폭락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벨경제학상(2013년) 수상자인 예일대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교수는 존 캠벨(John Campbell)과 함께 1988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안 지표를 제시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실러 PER, 흔히 CAPE(Cyclically Adjusted Price-Earnings Ratio,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로 불리는 지표입니다.
CAPE란 무엇인가 — 계산 공식
CAPE의 계산식은 일반 PER과 비슷해 보이지만 분모가 다릅니다.
CAPE = 물가조정 주가 ÷ 최근 10년 물가조정 평균 EPS
일반 PER이 "현재 주가 ÷ 최근 1년 EPS"를 쓴다면, CAPE는 최근 1년이 아니라 최근 10년치 EPS를 물가상승률로 조정한 뒤 평균 낸 값을 분모로 씁니다. 왜 굳이 물가조정을 거칠까요. 10년 전의 100원과 오늘의 100원은 구매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명목수익률과 실질수익률에서 다뤘듯,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가치는 물가상승률만큼 깎여나가므로, 10년 전 EPS를 오늘 EPS와 그대로 비교하면 과거 이익이 실제보다 작게 평가되는 착시가 생깁니다. 그래서 CAPE는 과거 각 연도의 EPS와 오늘의 주가를 모두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으로 오늘 화폐가치로 환산한 뒤에야 비교합니다.
왜 하필 10년 평균인가 — 경기순환 한 바퀴를 담는 창
10년이라는 기간은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닙니다. 전형적인 경기순환은 호황과 불황을 한 차례씩 거치는 데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보고, 그 창(window) 안에 이익이 가장 좋았던 해와 가장 나빴던 해를 함께 담아 평균을 냄으로써 어느 한 해의 극단치가 지표 전체를 왜곡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CAPE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일반 PER은 딱 1년치 스냅샷이라 경기순환의 어느 지점에서 찍었는지에 따라 값이 크게 요동치지만, 10년 평균은 호황기의 부풀려진 이익과 불황기의 위축된 이익을 함께 섞어 훨씬 완만한 기준선을 만듭니다.
숫자로 보는 CAPE — 이익이 반토막 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
가상의 지수로 확인해보겠습니다. 현재 주가지수가 3,000포인트이고, 마침 경기침체로 올해 EPS가 평소보다 크게 줄어 50포인트라고 해봅시다. 일반 PER은 3,000 ÷ 50 = 60배로, 역사상 유례없이 비싼 수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지수의 최근 10년 물가조정 평균 EPS가 150포인트였다면, CAPE는 3,000 ÷ 150 = 20배로 훨씬 차분한 수치가 나옵니다. 올해 이익이 일시적으로 침체 국면의 바닥을 찍었을 뿐, 10년을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밸류에이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작동합니다. 경기가 정점을 지나며 올해 EPS가 유난히 좋아 250포인트를 찍었다고 해봅시다. 일반 PER은 3,000 ÷ 250 = 12배로 꽤 저렴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250포인트가 10년 만에 가장 좋은 해의 이익이고, 10년 평균은 여전히 150포인트라면 CAPE는 앞선 예시와 똑같이 3,000 ÷ 150 = 20배입니다. 일반 PER만 봤다면 "싸다"고 오판했을 상황에서, CAPE는 그 저렴함이 일시적인 이익 정점 때문이라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두 경우 모두 일반 PER은 정반대의 신호(하나는 극단적으로 비쌈, 하나는 저렴함)를 냈지만, CAPE는 같은 20배로 훨씬 일관된 진단을 내놓았다는 점이 이 지표가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CAPE 해석 — 역사적 평균과 신호로서의 한계
실러 교수가 1881년부터 축적해온 미국 S&P500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CAPE의 장기 평균은 대략 16~17배 부근으로 흔히 인용됩니다. 이 평균보다 뚜렷이 높은 구간은 역사적으로 비싼 국면, 낮은 구간은 싼 국면으로 참고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 데이터에서 도출된 경험적 기준선일 뿐 절대적인 매수·매도선은 아닙니다. 버핏지수에서 다룬 것과 같은 맥락에서, CAPE가 평균보다 높은 구간에 진입한 뒤에도 실제 하락으로 이어지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 국면에서는 CAPE가 역사적 평균을 한참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간 뒤에도 시장이 몇 년을 더 상승했고, 2009년 금융위기 저점을 지난 이후로도 CAPE가 장기 평균을 웃도는 상태가 상당 기간 이어진 시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즉 CAPE는 "몇 주 뒤 조정이 온다"는 단기 타이밍 신호라기보다, 향후 10~20년 단위의 장기 기대수익률을 가늠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유용하다는 것이 학계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CAPE에 대한 비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금리와 주식 밸류에이션에서 다뤘듯, 금리가 구조적으로 낮은 시기에는 같은 이익이라도 정당화되는 밸류에이션 배수 자체가 높아지므로, 오래된 과거 평균과 오늘의 CAPE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 학자(대표적으로 제러미 시겔)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회계기준 변경으로 일부 금융회사들이 일시적으로 이례적인 규모의 손상차손을 반영하면서 그 시기의 10년 평균 이익이 실제 경제 상황보다 더 왜곡됐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판들이 CAPE 자체를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계를 함께 인지하고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CAPE와 장기 기대수익률 — 출발점이 비쌀수록 그 다음 10년이 힘든 이유
CAPE가 학계와 업계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지금이 비싼지 싼지"를 알려줘서가 아니라, 실러 교수 본인의 연구를 시작으로 여러 후속 연구에서 출발 시점의 CAPE 수준과 이후 10~20년 실질수익률 사이에 대체로 역(逆)의 관계가 관찰돼왔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는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가조정 10년 평균 이익 대비 이미 높은 배수를 지불하고 시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이후로도 밸류에이션 배수가 계속 더 높아져 주지 않는 한 남은 수익의 대부분을 이익 성장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CAPE가 낮은 시점에 들어가면 이익이 그저 평범하게만 늘어도, 여기에 밸류에이션 배수가 평균 수준으로 정상화되는 효과까지 더해져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 관계는 통계적인 경향성일 뿐 매 시기 정확히 들어맞는 공식이 아니며, 실제로 CAPE가 높은 채로 출발해 예상보다 훨씬 오랜 기간 양호한 수익률을 낸 구간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CAPE는 "내년 수익률"을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앞으로 10~20년의 기대수익률이 과거 평균보다 후하게 형성될지, 박하게 형성될지"를 가늠하는 확률적 참고 지표로 쓰는 것이 정확한 접근입니다.
실전에서는 어떻게 참고해야 할까
이런 성격을 감안하면, CAPE는 단기 매매 신호가 아니라 은퇴 자금 설계나 장기 자산배분처럼 수십 년 단위의 계획을 세울 때 "지금 출발점에서 과거 평균만큼의 수익률을 기대해도 되는지"를 점검하는 용도로 가장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은퇴 시점까지 필요한 노후자금을 역산할 때, CAPE가 역사적 평균보다 크게 높은 시점에서 출발한다면 과거 장기 평균 수익률을 그대로 가정하기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기대수익률을 함께 검토해보는 식입니다. 또한 CAPE 한 가지 수치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앞서 다룬 버핏지수나 일반 PER·PBR 같은 다른 밸류에이션 지표, 그리고 그 시기의 금리 환경까지 함께 교차 확인할 때 신호로서의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CAPE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빼거나, 낮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비중을 늘리는 식의 전술적 판단에 이 지표 하나를 근거로 쓰는 것은 앞서 살펴본 여러 사례가 보여주듯 권장되지 않습니다.
CAPE, 일반 PER, 버핏지수 — 무엇을 재는지가 다르다
세 지표는 모두 "시장이 비싼가 싼가"를 묻지만 계산 방식과 용도가 다릅니다.
| 구분 | 무엇을 비교하는가 | 강점 | 약점 |
|---|---|---|---|
| 일반 PER | 주가 ÷ 최근 1년 EPS | 최신 실적을 즉각 반영 | 경기순환 정점·저점에서 왜곡 큼 |
| CAPE(실러 PER) | 물가조정 주가 ÷ 물가조정 10년 평균 EPS | 경기순환 왜곡을 완화, 장기 신호에 적합 | 단기 타이밍 신호로는 부적합, 계산에 긴 이익 이력 필요 |
| 버핏지수 | 시가총액 합계 ÷ 명목 GDP | 기업 실적이 아니라 경제 전체 규모와 비교 | 다국적기업 매출 구조에 따라 왜곡 가능 |
셋 중 어느 하나가 항상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장 전체를 재는 도구이기 때문에 여러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신호로서의 무게가 더해진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정리
- 일반 PER은 최근 1년 이익만 쓰기 때문에 경기순환의 정점과 저점에서 실제 밸류에이션을 왜곡해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 CAPE(실러 PER)는 물가조정된 최근 10년 평균 EPS를 분모로 써서 한 해의 극단적인 이익 변동이 지표를 흔드는 것을 완화합니다.
- 같은 20배라는 CAPE 수치가 이익 급감기의 "60배처럼 보이는" 상황과 이익 급증기의 "12배처럼 보이는" 상황을 동일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지표의 핵심 효용입니다.
- 미국 S&P500 기준 장기 평균은 흔히 16~17배 안팎으로 인용되지만, 이는 경험적 참고선일 뿐 절대 기준이 아니며 금리 환경에 따라 "정상" 수준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CAPE는 몇 주 단위의 단기 타이밍 신호가 아니라 수년~수십 년 단위의 장기 기대수익률을 가늠하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CAPE가 역사적 평균보다 높으면 곧 하락이 오나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닷컴버블 국면처럼 CAPE가 평균을 크게 웃돈 뒤에도 시장이 몇 년 더 오른 사례가 있고, 반대로 평균 이상 구간이 별다른 급락 없이 오래 이어진 시기도 있습니다. 몇 주 단위 타이밍보다는 수년 단위 국면 판단에 더 적합한 지표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코스피에도 실러 PER(CAPE)이 있나요?
CAPE는 실러 교수가 1881년부터 축적한 미국 S&P500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인용되는 수치도 대부분 미국 시장 기준입니다. 해외 기관이 일부 국가별 CAPE를 함께 발표하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상장 역사와 회계기준 변화가 미국만큼 길고 일관되지 않은 시장에서는 10년 평균 실질이익을 산출하는 방식이나 공신력 있는 공식 수치가 미국만큼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일반 PER과 CAPE 중 어느 쪽을 더 믿어야 하나요?
둘 다 서로 다른 용도가 있는 보완적인 지표입니다. 일반 PER은 최근 실적 흐름을 빠르게 반영하는 데 강점이 있고, CAPE는 경기순환에 따른 왜곡을 걸러내 장기 밸류에이션 수준을 가늠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두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신호가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이며 특정 시점의 시장 진입·청산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예시 수치는 계산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 단순화한 가상의 값이며, 실제 CAPE 수치는 데이터 제공기관과 산정 시점에 따라 다르게 발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