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166/168강 · 고급 · 4분 읽기
스튜어드십 코드란 무엇인가 — 기관투자자가 '집사'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원리
이 글의 목차
"남의 돈을 맡은 집사"라는 비유
대량보유상황보고(5%룰)이나 ESG 투자 관련 글을 읽다 보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했다"는 문장을 자주 마주칩니다. 그런데 정작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확히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규칙인지는 설명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튜어드십(stewardship)은 원래 "집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집사는 저택을 소유하지 않지만, 주인의 재산을 맡아 성실하게 관리할 책임을 집니다.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같은 기관투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운용하는 돈은 결국 가입자나 고객의 돈이고, 그 돈으로 사들인 주식의 실질적 주인은 기관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수많은 개인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 기관투자자들에게 "남의 돈으로 산 지분이니, 주주로서의 권리와 책임도 성실하게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자율 지침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 코드가 왜 만들어졌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며, 한국에서는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왜 "형식적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왜 만들어졌는가 —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질문
스튜어드십 코드의 뿌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위기를 되짚어본 월커 보고서(Walker Review)는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는 동안, 그 회사의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한 연기금·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왜 아무런 견제도 하지 않았는지를 문제로 지목했습니다. 이들은 이론적으로는 주주총회에서 가장 큰 표를 가진 주주였지만, 실제로는 마음에 안 드는 종목을 그냥 팔고 떠나는 "조용한 주주"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이 반성에서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가 2010년 제정한 것이 세계 최초의 스튜어드십 코드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단순합니다. 상장회사를 규율하는 기업지배구조 코드가 "이사회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다룬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그 반대편에 있는 "주주, 특히 기관투자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짝입니다. 이사회만 잘 감시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이사회를 감시해야 할 주주 자신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영국의 실험이 효과가 있다고 평가되면서 네덜란드,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가 비슷한 자율 코드를 뒤따라 도입했고, 한국도 이 흐름에 합류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무엇을 요구하는가 — 컴플라이 오어 익스플레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크게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의결권 행사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 둘째, 투자대상 회사와 이해상충이 생길 수 있는 상황(예: 계열 자산운용사가 모기업 안건에 투표하는 경우)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밝힐 것. 셋째, 단순히 주주총회 당일 표만 던지는 게 아니라 투자대상 회사의 중장기 가치와 위험 요인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면 경영진과 비공개로 의견을 나누는 "관여(engagement)"에 나설 것. 넷째, 이 모든 활동의 결과를 매년 보고서로 공개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코드가 법으로 강제하는 규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신 컴플라이 오어 익스플레인(comply or explain)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씁니다. 코드에 서명한 기관은 각 원칙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으면 왜 지키지 않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벌금이나 제재가 없는데도 이 방식이 작동하는 이유는 평판 압력입니다. "우리는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이유는 설명하지 않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써야 한다면, 대부분의 기관은 차라리 원칙을 지키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주주행동주의가 지분을 사들여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공격적 접근이라면, 스튜어드십은 기존 경영진과의 대화와 정기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한 점진적 개선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한국은 어떻게 도입했나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과정이 논란이 된 뒤, 학계 중심의 제정위원회가 2016년 12월 공식 명칭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발표했습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법적 의무가 아닌 자율 참여 방식이며, 참여를 선언한 기관 수는 2017년 16곳에서 최근에는 200곳을 훌쩍 넘는 수준까지 늘었습니다. 다만 민간 자율 코드와는 별개로,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이 원칙을 도입하기로 의결했습니다. 국민연금의 보유 종목 수와 지분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국민연금이 어떤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느냐는 그 자체로 시장의 관심사가 됩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이 원칙 도입 이후 이사 선임이나 보수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다만 감사원이 지적했듯 그 기준이 모든 안건에서 일관되게 적용됐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이 간극이 뒤에서 다룰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흐름은 5%룰에서 다룬 "일반투자" 목적 신설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통상적인 주주권 행사가 과거처럼 "경영참여" 공시 의무를 지나치게 넓게 끌고 가지 않도록 중간 단계가 생긴 것도,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책임을 더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밀어준 제도적 변화 중 하나입니다.
관여는 어떻게 단계적으로 진행되는가
스튜어드십이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은 "주주총회에서 반대표 한 번 던지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이 흔히 따르는 방식은 비용이 작은 조치부터 시작해 점차 강도를 높이는 단계적 접근입니다. 가상의 사례로 감을 잡아보겠습니다. A자산운용이 투자한 B기업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독립성 논란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단계는 비공개 대화로, 경영진이나 이사회에 직접 우려를 전달하고 해명이나 개선을 요청합니다. 여기서 받아들여지면 공개적인 충돌 없이 끝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단계로,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연합해 공동 서한을 보내거나 압박의 강도를 높입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3단계로 주주총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대표를 던지고, 그 이유를 의결권 행사 보고서에 명시해 외부에 공개합니다. 가장 마지막 단계는 투자 자체를 접는 것, 즉 해당 종목을 매도하고 떠나는 선택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2008년 이전의 관행과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순서입니다. 과거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4단계(매도)로 건너뛰는 것이 기본값이었다면, 코드는 그 전에 1~3단계를 성실하게 시도했는지를 묻습니다. 이 과정 전체를 "관여(engagement)"라 부르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기록하는 것이 코드가 요구하는 핵심 의무입니다.
비판 — 왜 "숨은 권력"이자 "형식적 운영"이라는 지적을 동시에 받는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비판은 상반된 두 방향에서 동시에 나옵니다. 한쪽은 영향력이 너무 작다는 비판입니다. 감사원은 국민연금이 일관된 기준 없이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지적했고, 시민사회 쪽에서는 많은 기관이 서명만 해두고 실제로는 경영진 제안에 기계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박스 체크(box-ticking)"에 그친다고 비판합니다. 보고서는 번듯하게 작성되지만, 정작 반대표를 던져야 할 안건에서는 소극적이라는 것입니다. 반대쪽은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비판입니다. 패시브 투자의 구조적 위험에서 다룬 것처럼, 소수의 대형 운용사가 경쟁 관계에 있는 여러 기업의 지분을 동시에 대량으로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팀이 수만 개 기업의 표를 사실상 좌우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권력 집중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두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자율 규범이기 때문에 "너무 소극적이다"와 "실제로는 너무 세다"는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기관마다, 안건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여기에 더해 구조적인 이해상충 문제도 꾸준히 제기됩니다. 많은 자산운용사는 연금이나 공제회 같은 큰 고객을 상대로 펀드 운용을 수탁받아 영업하는 동시에, 그 고객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회사의 주식에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이때 계열회사 경영진에게 불리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면 향후 영업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실제로는 쓴소리를 아끼게 되는 유인이 구조적으로 존재합니다. 코드가 "이해상충 관리 정책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것이지만, 정책을 공개하는 것과 그 정책이 실제 투표 행태에 반영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금융당국이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코드의 이행 점검 절차를 보완하는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제도 자체가 계속 다듬어지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투자자가 이 개념을 알아야 하는 이유
개인 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에 직접 서명하거나 적용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알아두면 뉴스를 읽는 눈이 달라집니다. "국민연금이 OO기업 이사 선임안에 반대했다"는 기사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대형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책임에 따라 지배구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기관이 명백히 문제가 있는 안건에도 계속 찬성표만 던진다면, 그 기관의 스튜어드십 보고서가 실제 행동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의심해볼 근거가 됩니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내가 투자한 펀드나 연금이, 내 돈으로 산 지분의 주주권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행사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입니다. 이 코드를 안다는 것은 투자 수익률과 직접 연결되는 기법이 아니라, 내 돈을 대신 굴리는 기관이 실제로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는지를 읽어내는 리터러시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나 주요 자산운용사는 매년 의결권 행사 방향과 그 근거를 담은 스튜어드십 보고서를 공시하고, 일부는 개별 종목·개별 안건 단위로 찬반 내역까지 공개합니다. 내가 가입한 연금이나 펀드가 이런 보고서를 실제로 발행하는지, 그리고 그 보고서가 추상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반대표 사례를 담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관이 스튜어드십을 형식적으로 다루는지, 실질적으로 다루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펀드를 고를 때 수수료와 과거 수익률만 비교하고 지배구조 관여 방침은 전혀 보지 않는다면, 장기 투자자로서 놓치고 있는 정보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나요?
아닙니다. 법적 의무가 아닌 자율 참여 코드이기 때문에 벌금이나 제재는 없습니다. 다만 서명한 기관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컴플라이 오어 익스플레인" 방식이라, 평판에 대한 압박이 사실상의 준수 유인으로 작동합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와 한국의 민간 스튜어드십 코드는 같은 것인가요?
뿌리는 같지만 구분됩니다. 2016년 학계 제정위원회가 만든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은 모든 기관투자자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코드이고,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통해 이 원칙을 자체적으로 도입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스튜어드십과 주주행동주의는 어떻게 다른가요?
주주행동주의는 지분을 사들여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경영권 변화를 추구하는 공격적인 접근입니다. 반면 스튜어드십은 기존 경영진과의 대화, 정기적인 점검, 의결권 행사를 통한 점진적 개선에 무게를 두는 접근으로, 경영권 자체를 흔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