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초 · 90/90강 · 고급 · 4분 읽기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이란 무엇인가 — 크레디트스위스 사태로 본 AT1 채권의 함정
이 글의 목차
"신종자본증권 3천억 원 발행" 공시, 채권인데 왜 이렇게 복잡할까
금융지주나 은행의 공시를 보다 보면 "신종자본증권 발행 결정"이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마주칩니다. 채권이라고 부르기엔 만기가 없고, 자본이라고 부르기엔 이자를 주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신종자본증권이라 부르고, 해외 뉴스에서는 코코본드(CoCo Bond, Contingent Convertible Bond)나 AT1채권(Additional Tier 1)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세 이름 모두 같은 부류의 증권을 가리키지만, 정확히는 은행이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 가운데 은행이 위기에 빠지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소각)되는 조건이 붙은 것을 코코본드·AT1채권이라 부릅니다. 이 강의에서는 이 증권이 왜 존재하는지, 위기 상황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사태가 왜 전 세계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는지를 다룹니다.
빚도 아니고 주식도 아닌, 은행판 하이브리드 증권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는(영구채) 채권 형태를 띠지만 회계·규제상으로는 자본으로 인정받는 증권입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스타트업이 부채와 자본 사이 어딘가에 설계한 증권이듯, 신종자본증권은 은행판 하이브리드 증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RCPS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RCPS의 전환권은 투자자가 유리할 때 스스로 행사하는 권리인 반면, 코코본드의 전환·상각은 투자자의 선택이 아니라 은행의 재무 상태가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강제로 발동됩니다. 평상시에는 정기적으로 이자(분배금)를 받는 평범한 채권처럼 보이지만, 은행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성격의 증권으로 돌변하는 구조입니다.
은행이 이 복잡한 증권을 발행하는 이유 — 바젤III 자기자본 규제
이런 복잡한 증권을 은행들이 앞다퉈 발행하는 이유는 국제 은행 규제인 바젤III(Basel III) 때문입니다. 바젤III는 은행이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최소 6%의 기본자본(Tier 1)을 갖추도록 요구하는데, 이 6% 가운데 4.5%는 보통주 등으로 채운 보통주자본(CET1)이어야 하고 나머지 1.5%는 신종자본증권(AT1, Additional Tier 1)으로 채울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은행 입장에서 유상증자로 보통주를 늘리면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고 주가에도 부담을 주지만, AT1은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 형태이면서도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받으니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자기자본비율을 채울 수 있는 수단입니다. 즉 투자자에게는 회사채보다 살짝 더 얹어주는 이자를 받는 상품처럼 보이지만, 은행과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위기 시 손실을 흡수해 예금자와 시스템을 보호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는 자본입니다.
트리거가 작동하는 순간 — 주식 전환 또는 전액 상각
신종자본증권을 코코본드답게 만드는 핵심은 트리거(trigger) 조건입니다.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 비율)이 사전에 정해둔 기준선 — 통상 7% 또는 최저선인 5.125% — 아래로 떨어지면, 계약서에 명시된 방식대로 증권의 운명이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식 전환(conversion)으로, 정해진 비율에 따라 채권이 보통주로 강제 전환되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원금 상각(write-down)으로, 채권 원금 자체가 부분적으로 혹은 아예 전액 사라지는 방식입니다. 어느 쪽이든 투자자가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고 버틸 여지는 없습니다. 트리거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에 따라 강제로 집행됩니다. 여기에 더해 재무비율과 무관하게, 규제 당국이 "이 은행은 이대로 두면 존속이 불가능하다(point of non-viability)"고 판단하면 재량으로 트리거를 발동시킬 수 있는 조항도 흔히 포함됩니다. 즉 숫자로 정해진 트리거 외에도, 감독당국의 판단이라는 두 번째 스위치가 항상 함께 존재하는 셈입니다.
같은 코코본드라도 발행 조건서에 상각형과 전환형 중 어느 쪽으로 설계했는지에 따라 위기 시 결과가 크게 갈립니다. 상각형은 트리거가 발동되면 원금이 그대로 소멸하고 투자자에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전환형은 그나마 주식이라는 형태로 가치의 일부가 남을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상각이 "영구적(permanent)"인지 "일시적(temporary)"인지도 조건마다 다른데, 일시적 상각은 이후 은행의 자본비율이 회복되면 상각된 원금 일부를 되살려주는 조항을 두기도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발행 조건에 명시된 경우에 한합니다. 이런 세부 조항의 차이는 평상시 발행 안내문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다가, 정작 은행이 위기에 빠졌을 때 투자자의 실제 회수율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됩니다.
만기 없는 채권, 그리고 안 줘도 되는 이자
신종자본증권이 낯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만기와 이자 지급 방식에 있습니다. 이 증권은 애초에 만기가 없는 영구채로 설계되며, 대신 통상 발행 후 5년이 지나면 은행이 규제 당국 승인을 받아 조기상환(콜옵션)할 수 있는 구조를 넣습니다. 다만 바젤III는 이 콜옵션 시점에 이자율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스텝업(step-up) 조항을 금지하고 있어서, 투자자가 "5년 뒤엔 당연히 상환되겠지"라고 확신할 근거는 법적으로 없습니다. 이자 지급도 마찬가지로 은행의 재량입니다. 이자는 비누적적(non-cumulative)으로 설계되어, 은행(또는 감독당국)이 특정 분기의 이자 지급을 건너뛰어도 이는 법적 채무불이행(디폴트)에 해당하지 않으며, 건너뛴 이자를 나중에 몰아서 지급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일반 회사채라면 이자를 한 번만 못 줘도 부도 처리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사태 — 순위가 뒤집힌 날
이 증권의 위험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2023년 3월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사태입니다. 스위스 정부 주도로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크레디트스위스의 AT1채권 약 CHF 160억 프랑(약 170억 달러) 전액을 상각해 가치를 0으로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이 계약상 "존속 불가능 사건(viability event)"에 해당한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다음 대목이었습니다. AT1채권 투자자들이 한 푼도 건지지 못한 것과 달리, 보통주 주주들은 UBS 주식을 일부나마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대부분의 발행 조건서는 "손실이 발생하면 보통주가 먼저 완전히 소멸된 뒤에야 AT1 같은 후순위 증권이 손실을 떠안는다"는 순서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혀, 이론상 주주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야 할 채권 투자자가 주주보다 먼저, 그리고 완전히 손실을 떠안은 셈이 됐습니다. 골드만삭스 신용전략팀이 이를 두고 "AT1 채권자가 사실상 주주보다 후순위로 취급됐다"고 평가할 정도로 이례적인 결정이었고, 전 세계 코코본드 시장이 일제히 출렁였습니다. 이후 약 3,000명의 채권 보유자가 스위스 연방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국제투자분쟁(ISDS) 청구까지 이어졌습니다. 2025년 10월 스위스 연방행정법원은 FINMA의 상각 결정이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며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지만, FINMA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이 사건은 2026년 현재까지도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시장 자체는 사태 직후 큰 폭으로 흔들렸다가 이후 발행이 재개되며 회복했고, UBS는 논란을 의식해 2024년 4월부터 발행하는 자사 AT1채권에는 순수 상각 방식 대신 실제 주식 전환 메커니즘을 명시하도록 구조를 바꿨습니다.
이 강의에서 투자자가 얻어가야 할 것
크레디트스위스 사태의 교훈은 "신종자본증권은 위험하니 피해야 한다"가 아니라, 법적 순위표와 위기 상황에서의 실제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발행 설명서에 적힌 문구가 상각(write-down) 방식인지 주식 전환(conversion) 방식인지, 트리거 기준이 7%인지 5.125%인지, 감독당국 재량 조항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에 따라 같은 "신종자본증권"이라도 위기 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이 정기적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며, 개인 투자자는 이를 직접 매수하거나 관련 펀드·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 증권이 일반 회사채보다 높은 이자를 주는 이유는 단순한 "우량 회사채보다 조금 더 위험해서"가 아니라, 은행이 흔들리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원금 전액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구조적 꼬리 위험(tail risk)을 감수하는 대가라는 점을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할 때는 신용등급이나 표면 금리만 비교하기보다, 신용스프레드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것처럼 그 스프레드가 정확히 어떤 위험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함께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일반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는 대체로 "이 회사가 부도날 확률"을 반영하지만, 코코본드의 스프레드에는 발행 은행의 부도 확률뿐 아니라 "은행이 부도까지 가지 않고도 자본비율만 흔들려 트리거가 발동될 확률", 그리고 "트리거가 발동됐을 때 상각형인지 전환형인지에 따라 갈리는 회수율"까지 함께 녹아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비슷한 금리를 주는 두 코코본드라도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합이 다르면 실제 위험 수준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발행 조건서의 세부 문구를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정리
-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채권)은 만기 없는 영구채 형태를 띠지만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받는 은행판 하이브리드 증권으로, 바젤III가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Tier 1 6% = CET1 4.5% + AT1 1.5%)을 채우기 위해 발행됩니다.
-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7%나 5.125% 같은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거나 감독당국이 존속 불가능을 선언하면, 계약에 따라 주식 전환 또는 원금 상각이 강제로 실행됩니다.
- 만기가 없고 통상 5년 뒤 콜옵션이 있지만 상환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자도 비누적적이라 은행이 재량으로 건너뛸 수 있고 이는 디폴트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사태에서는 AT1채권(약 CHF 160억)이 전액 상각된 반면 주주는 UBS 주식을 받아, "주식보다 채권이 우선한다"는 통념이 무너지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발행 설명서의 트리거 기준과 상각·전환 방식은 증권마다 다르므로, 높은 이자율의 이면에 있는 구조적 꼬리 위험을 이해하고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신종자본증권과 전환사채(CB)는 어떻게 다른가요?
전환사채(CB)의 전환권은 투자자가 주가가 유리할 때 스스로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권리입니다. 반면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의 전환·상각은 투자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발행 은행의 자본비율이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거나 감독당국이 판단할 때 계약에 따라 강제로 집행됩니다. 하나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선택권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 위기 시 발동되는 손실 흡수 장치라는 점에서 성격이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국내 금융지주도 코코본드를 발행하나요?
네. 신한·하나·우리·KB·NH농협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정기적으로 발행합니다. 다만 트리거 기준이나 상각·전환 조건의 세부 문구는 발행사와 발행 회차마다 다르므로, 특정 종목의 위험을 판단하려면 해당 증권의 발행 조건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개인 투자자가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할 수 있나요?
직접 매수도 가능하고, 관련 채권형 펀드나 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편입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강의에서 다룬 것처럼 일반 회사채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극단적 상황에서는 원금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으므로, 표면적인 이자율만 보고 접근하기보다 트리거 조건과 상각·전환 방식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자를 못 받으면 그 은행은 부도난 건가요?
아닙니다. 신종자본증권의 이자(분배금)는 애초에 비누적적·재량적으로 설계돼 있어서, 은행이 특정 회차의 지급을 건너뛰어도 이는 일반 회사채의 이자 미지급과 달리 법적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자 지급이 중단됐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은행의 재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신호로 시장에서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원인이 된 재무 상태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본문에 언급된 회사나 사건은 공개된 사실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특정 증권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